"의사 입장에서도 부담이 되는 매우 위험한 수술이다. 조금만 잘못되어도 엄청난 재앙이 생길 수 있다.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에도 앞으로 긴 싸움을 해야 한다. 하지만 수술을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장담할 수 없고 더 위험할 수 있다. 그렇기에 모든 걸 고려하고도 수술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두 달 전, 나의 시간을 멈추게 만든 의사 선생님의 말씀.
나를 더 힘들게 한 건 그 대상이 내가 아니라 아내라는 것.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욕도 하나 제대로 못하는,
술, 담배도 하지 않는,
살아온 삶의 결 자체가 다른 나 같은 놈과 결혼해 준 천사 같은 사람에게 왜 이런 시련이 찾아온 건지...
뉴스 검색을 5분만 해봐도 세상에는 천벌을 받아 마땅한 인간들이 널리고 널렸는데...
너무나 담담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아내를 보면서 더 마음이 아팠다.
어쨌든 이런 슬픔과 분노에 빠져 있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우선은 수술 여부를 결정해야 했고, 우리는 하기로 했다.
그동안 "남편"이나 "배우자" 라는 호칭으로 숱하게 불려 왔지만... "보호자"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건 역시나 어색하다. 몇 년 전 배 속의 아기에게 문제가 생길 뻔한 위기가 닥쳤을 때도 난 "보호자"라고 불렸고 임신 기간 중 몇 달을 병원에서 생활하면서 불안감에 빠져 있었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또 많이 다르다.
담담한 아내를 보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수술일까지 평소와 똑같이 지내보는 것이었다. 아내도 싫지 않은 눈치였고, 우리는 그렇게 평소처럼 시간을 보냈다.
여기저기 여행을 다녀오고,
친구들과 지인들 모임에도 참석하고,
세미나 주최와 세션 발표도 하고,
회사 업무로 야근도 하고,
틈나는 대로 기술 문서도 보고,
Microsoft MVP 갱신에도 도전하고,
당장 수술이 코앞인데 그 이후 시점에 대한 계획도 세워보고, 등등
효과는 생각보다 괜찮았고 우리는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수술일이 잡히고,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하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말문이 막힌 적이 있나 싶고, 내가 이렇게 말을 못 하는 사람이었구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천사 같은 아내가 나에게 먼저 한마디를 꺼냈다.
"오빠, 나 어디 숨겨 놓은 빚이나 그런 거 없어. 혹시 모르니 미리 말해주는 거야."
이 농담 섞인 한마디가 막혀 있던 내 말문을 트이게 해줬다. 얼마나 고맙던지...
"알아. 있으면 내가 벌써 찾았을걸. 그리고 숨겨 놓은 빚이 있어도 내가 있을 확률이 높지~"
이걸 시작으로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나를 만난 게 더 행복해? 아들을 만난 게 더 행복해?" 라는 유치 찬란한 내 질문에도
"오빠가 모든 것에 시작이니 오빠 만난 게 더 행복하지" 라고 답해주는 이 착한 사람이
지금 수술실에 들어가 있다.
저렇게 긴 시간 동안 수술을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긴 수술 예정 시간이 남아 있는 지금...
저기 들어가 있는 사람이 아내가 아니라 나였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동안의 내 삶이 너무 행복해서일까? 하늘이 나를 시기해 잠시 쉬었다 가라는 뜻으로 생긴 일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 끝은 해피엔딩이 될 거라고 믿는다.
SNS를 하지 않기에 이런 공간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걸 싫어하는 와이프가 건강해져서, 나중에 이 글을 보고 나한테 주는 핀잔을 듣고 싶다. 아니 화를 내고 소리치는 것이라도 듣고 싶다.
그렇게 될 거라고 믿으면서 남은 시간을 기다려본다.
그리고 오늘이 내 생일이다.
내 생일날, 수술하는 아내가 수술 성공이라는 내 인생 최고의 생일 선물을 들고나올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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